인생횡단, 박정헌(퍼온 글)
거친 '인생횡단'을 끝낸 남자가 앞에 서있다. 10년 전 잃어버린 손가락을 대신해 그를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일까. 그 이후의 삶의 깊이는 아무도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 그는 10년을 지켜온 자신을 또 한 번 히말라야에 내던지고 왔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수많은 봉우리를 오갔고, 산악스키로 히말라야의 살결을 헤쳤고, 카약에 올라 수 천만번의 패들링으로 강물에 생체기를 남겼다. 지상낙원 '베율'로 가는 길을 찾아 앞만 보던 네 남자, 그 선두에 박정헌 대장이 있었다.
얼마 전 종영된 SBS 스페셜 '인생횡단'편은 많은 이에게 후유증을 남겼다. 박정헌 대장 일행이 지상 낙원 '베율'로 가는 길을 3주간 지켜본 기자 역시 '모험'이라는 유년기 호기심을 입 밖으로 꺼내놓았을 정도니 말이다. 모든 이에게 한때 모험을 꿈꾸던 시절은 있다. 하지만 사춘기보다 더 일찍, 중2병 보다 더 빨리 낯부끄럽게 숨겨야 했던 꿈. 박정헌은 그 꿈을 미련하리만큼 좇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아무도 '베율'의 실체를 찾지 못했으니 실패했다고 박정헌 대장 일행을 비난하지 못 했다. 티베트 불교에서 예언된 전설의 낙원, '베율'. 서쪽 끝 파키스탄부터 티베트, 네팔을 거쳐 동쪽 인도 시킴까지 장장 6600km, 180일간의 여정 동안 그들이 찾은 것은 진정한 '베율', 즉 진정한 자신이었다. 오롯이 홀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이 비록 많은 이와 함께였지만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인생인 것처럼. 그렇게 박정헌 대장은 우리에게 지상낙원 '베율'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히말라야의 철학자
말 그대로다. 박정헌은 히말라야의 철학자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2005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박정헌은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을 등정 후 하산길에 후배 최강식이 크레바스(crevasse)에 빠지는 사고와 맞닥뜨린다. 자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고 있었기에 추락하는 순간 박정헌의 갈비뼈도 부러진다. 최강식의 무게는 장비를 합쳐 90kg이 넘었다. 하지만 겨우 70kg이던 박정헌은 최강식의 자일을 9일간 끊지 못한다.
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그 속에서 박정헌은 또 다른 인간애를 찾았다. 9일 만에 구조된 그는 여덟 개의 손가락을 히말라야에 바쳤다. 사고 이후 박정헌은 지독하리만치 히말라야에 매달렸다. 그리고 오르지 못하는 대신 날기를 선택했다. 박정헌은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 횡단에 도전했고 2012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산맥 2400km를 넘었다.
이번 횡단은 그가 히말라야에서 사고를 당한 후 두 번째 횡단이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그는 히말라야가 새롭다고 말한다. 날지 않을 때는 몰랐던 설산 이외의 히말라야, 즉 강, 빙하, 사막, 초원 등 '인생횡단'에서 볼 수 있었던 히말라야도 그것과 같다. 박정헌은 매번 낯선 히말라야가 여전히 궁금하다. 그는 아직도 새로운 히말라야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 말한다.
"히말라야는 내 여덟 손가락을 가져간 대신 나에게 무한한 자유를 줬다. 치명적인 크레바스를 품은 설산 히말라야는 사고 이후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예컨대, 눈표범을 품은 히말라야는 한 번도 사람을 허락한 적 없었다. 나는 언젠가 눈표범과 야크를 품은 히말라야를 만나고 싶다. 히말라야는 나에게 끝없이 도전하라고, 아무도 모르는 자신을 찾으라고 말한다. 언제부턴가 찾아야 하는 것이 히말라야인지 나 자신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지혜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hye@outdoo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