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추억의 중국여행(운남기행)

돌핀솔(月下 차영달) 2013. 12. 10. 12:17

 

중국에서 지낸 세월이 제법 되어, 경험으로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 황금 연휴에는 명승지 어디에나 인산인해라 기피하고 싶지만, 나 역시 여정이 허용되는 시간은 연휴 밖에 없는데다 역마살마저 낀 이 몸이라, 이를 감수하고 길을 나설 수 밖에 없다. 

 

이번 여정은 평소에 가고 싶었던, 중국에서 여덟번째 크고, 가장 많은 27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운남성(雲南省) 이다. 전체 지역의 94%가 해발 97~6000미터에 걸쳐져, , 약초 등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되어 있으며, 연 평균기온 16도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산간 지역이다. 이 중 봄의 도시이자, 꽃의 도시인 성도(省都) 곤명(昆明 : Kunming)과 대리석으로 유명한 대리(大理 : Dali), 그리고 해발 5596미터의 만년설의 옥룡설산(玉龍雪山)이 있는 려강(麗江 : Lijiang) 세 곳이 이번 주요 여정이다.

 

일행은 회사 동료와 지인 가족 하여 12명이다. 거주지인 혜주(惠州 : Huizou)15 30에 출발, 심천 비행장 18:40 , 20시 20 곤명에 도착하여 호텔 여장을 푸는 첫날 일정을 마감하였다.

 

다음 날은 부지런을 떨어 07:00 곤명 출발, 07:45 대리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장에 내리는 순간 아침 햇살이 멀리 눈 덮인 창산울 비추며, 대지에 퍼지기 시작한다. 한국의 초가을 같은 상큼한 기운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늘 푸른 아열대 지방에 살다가, 논과 밭 그리고 산이 누런 가을 색깔을 보니 한국의 가을 풍경 같아 정겨움이 살며시 든다.

 

대리(大理)는 해발 2000m이상의 분지에 산(蒼山)과 호수(;耳海)가 멋지게 어우러진 11개 현() 1개시로 이루어진 도시다. 인구는 가장 많은 백족(白族) 21개 소수민족 등 130여만 된다. ()대에는 남조국, ()대에는 대리국이라 불려지기도 한, 500여년 역사를 간직한 운남성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이다. 또한 아시아 문화의 십자로 역할을 한 고도로써 국가급 여행 도시요, 자연 보호구이다. 주요 볼거리로 창산과 이해 풍광이 있으며, 중국문화 역사의 대리고성(大理古城), 숭성사(崇聖寺) 3층탑, 영화로 유명한 천룡팔부성(千龍八部城), 호접천(蝴蝶泉), 남조풍정도(南詔風情島), 동남아의 유명한 불교 성지인 계족산(鷄足山), 강남의 숨겨진 보물 석종사(石鐘寺) 석굴. 중후한 백족 문화가 살아 있는 삼도차(三道茶), 3월가 민족절, 희주(喜州) 거주지 등이 있다. 그리고 대리석은 바로 이곳의 명물로 이 지역 이름을 따 왔다.

 

어제는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오늘은 다행이 날씨가 맑아 좋은 구경이 될 거라고 안내원이 자랑한다. 거리의 코스모스가 바람에 날리고, 얼하이 호수 바람이 시원하다. 공장이 거의 없어 오염되지 않은 신선하고 맑은 공기가 더 없이 좋다. 이곳의 주요 민족이 백족 인데, 특히 백족 아가씨가 쓰고 있는 모자에는 창산의 눈, 얼하이 호수의 달, 대리의 바람, 들판의 꽃이 어우러진 전설이 담겨져 있단다. 첫 목적지는 대리 시가지 조망이 뛰어난 창산 중화사(中和寺)이다. 창산은 마용봉(馬龍峰: 4122M)을 중심으로 19개의 3000M 이상의 봉우리와 많은 골짜기, 그리고 폭포를 안고 있다. 해발 약  2800m에 위치한 중화사는 걸어 올라가도 되지만, 여정상 리프트로 오른다. 출발한 지, 15분에 닿은 절은 중국 대부분이 그렇듯 다분히 도교 사원이다. 불교의 관음보살은 한쪽 곁으로 물러서 있다. 이 절의 백미는 역시 대리 시가지 전체와 호수(얼하이)와 멋진 자태를 조망하는 것이다. 보는 순간 여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절을 내려와 대리고성을 지나, 얼하이 호수에서 가장 큰 섬, 금사도를 찾기 위하여 선착장을 향했다.

 

고원명주(高原明珠)라고 칭하기도 하고, 그 형상이 사람의 귀를 닮고, 크기가 넓어 “얼하이(;耳海)”라고 부르는데, 해발 1972m에 위치한 담수호로 길이 42Km, 3.5~7.5Km, 둘레 150Km, 면적 252평방Km, 수심 21m 의 이 호수에는 3개의 섬, 4개의 평야, 5개의 작은 호수가 있으며, 많은 수자원이 있어, 이를 생활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주위의 창산 연봉과 호수가 어우러진 모습이 멋지며, 특히 눈 덮인 산이 호수에 비쳐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은창옥이(銀蒼玉;)”라고 불려 진다.

 

금사도 가는 약 40분간의 맑고 깨끗한 시원한 뱃길은 위치에 따라 변하는 창산의 다양한모습 구경거리가 좋고, 이곳 특산의 새우구이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 또한 상쾌함을 더해 준다. 금사도 자체 볼거리는 빈약한데, 선착장에 먹거리, 기념품 가게만 활발하다. 섬 구경을 마치고 대리로 다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끝내고, 대리 여행의 마지막 대목, 백족의 민속공연을 보면서, 사람의 일생과 같은 세 가지의 맛(쓰고, 담백하고, 달콤한)을 담은 삼도차(三道茶)를 즐긴다.

 

오후 3시 반경 대리를 출발하여, 우리가 탄 차는 강원도 산골 같은 200Km를 고도를 오르내리면서 달려, 사방이 어두워 질 무렵인 오후 7시경 관광 도시인 리지앙(麗江)에 다다른다. 해발 2000m 이상이라 지형은 고원지대 그대로의 도시 모습이고, 시가지 뒤에 우뚝 솟은 옥룡 설산은 짙은 구름 속에서 그 자태를 숨기고 있다.

호텔에 짐을 풀은 뒤, 라시(拉西)족의 결혼 음식을 저녁 식사로 정했다는 안내원의 말을 따라 어두운 길을 찾아 한 가정에 들어 갔다. 그들의 문화 체험이라 하지만, 안내원 아가씨 역시 라시족이라 다분히 장사 속이 있겠지 생각한다. 먹기에 거북스럽지 않고, 살갑게 반기는 그들의 웃음이 소박하여 싫지 않은 식사였다. 내일의 일정을 대비하여 호텔로 돌아와 이른 잠자리에 들어갔다.

 

려강은 4개 현의 인구 104 만 명의 라시(拉西)족 등 20개 소수민족과 한족이 살고 있다. 특히 이곳 라시족의 동파(東巴)문화는 (상형)문자 기원과 발전을 볼 수 있고, 이들의 고유 음악은 살아 있는 동방 음악의 화석이라 칭 한다. 이곳의 주요 경관으로 웅장한 자태의 옥룡 설산, 세계 문화 유산인 려강 고성, 흑룡담 등 많은 볼거리와 다양한 소수민족의 생활 모습, 그들의 문화 유산들이 그대로 남아 곳곳에서 재현하고 있어,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진 관광지로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정의 사흘 째다. 남보다 이른 식사를 하고, 둘러 본 아침 시장은 어디나 부지런한 사람들의 집합소라 생기가 넘친다. 생전 처음 보는 채소도 있다. 여명 속의 옥룡설산은 여전히 구름의 베일 속에서 정상을 보여 주지 않는다. 아침에 만난 안내원은 잠자리에 고통(고소증세)이 없었느냐 물어본다. 2000m이상의 고지라, 호텔 방마다 비상용 산소(간이형이나 고가임)가 비치되어 있었다. 오늘의 고산 등행을 대비하여 어제 예약한 산소를 가져 왔다. 에프 킬라 모기향 캔 크기로 아주 가볍다. 효능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만일을 위하여 준비를 한다.

 

숙소를 나와, 기원전 6년에 그렸다는 여강 벽화(라시족의 옛 생활모습, 종교관 등을 묘사)를 보고, 이들의 종교적 사상(지옥/인간/극락세계의 모습)을 상징하는 동파 선원을 구경하였다. 이 곳은 마치 제주도와 같다는 인상이 든다. 너른 평지에 각종 조각물을 설치한 자연 그대로 종교 성지다. 그리고는 호수 색깔이 파란 선인유전(仙人遺田)이라는 백수하(白水河)를 구경한다.

2500m이상의 고지라 고소 증세를 느껴지는 것 같아 다소 긴장 된다. 이곳에서는 해발 3800m(운삼평:雲杉坪) 4506m(옥룡설산)를 올라 가는 2개의 고산 체험 코스가 있다. 안내원은 건강상 장애가 있는 사람은 3800m를 오르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일행은 의논 끝에 일단 4506m고지까지 올라 보기로 한다. 매표 후, 탑승장으로 전용버스로 이동하여, 이태리 기술자들이 만들었다는 케이블카를 탄다. 제법 빠른 속도로 고도를 올라가며 지형은 삼림지대, 고사목 지대, 모레인(빙하 퇴석) 지대로 바뀌어 가며, 빙하 지대의 종착점에 다다른다. 구름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암봉 들이 자웅을 겨루고 있다.

 

2000m 고도를 불과 15분만에 올라 오니, 내리는 순간 다가오는 약간의 어지럼증(고소 증세)이 보이는 듯 하다, 이 곳이 식당, 휴게실, 임시 구급소 등이 있는 해발 4506m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한다.

 

 여기서 관광객 들은 4680m고지까지 걸어서 오를 수 있는데 거리는 약 1000m 남짓이다. 길은 철 난간과 목재로 다니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 이런 시설을 갖춘 장사 속이 놀랍다. 이 짧은 거리지만 오르는 동안, 어지럼증, 호흡 곤란 등 고소 증세를 이겨내어야 한다. 중간 중간 쉬는 사람, 산소를 마시는 사람, 고통을 못 이겨 되돌아 서는 사람들이 많다. 일기는 고소답게 계속 변화 하면서도 정상은 보여줄 듯 말 듯 한다. 이 산에 살고 있는  여신은 체격 건장한 사람을 좋아 하여, 그 사람이 산(자기)을 향하여 손을 세 번만 흔들면, 날씨가 개이면서, 정상을 보여 준다는 설화가 있단다. 나도 그 얘기를 듣고 몇 번을 손 흔들었는데, 정상을 보여 주지 않음은 나는 여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 모양이다. 출발한 지 약 20 여분 만에 오름의 최종 고지인 4680m에 다다른다.

 

 

바로 앞은 만년설 빙하 지대이고, 봉우리 들이 눈앞에 서 있다. 장엄한 모습이다. 더 가고 싶지만 생각뿐 이다. 이 산은 지금도 계속 조금씩 붕괴되면서 등로를 만들 수 없어. 아직 미등 상태란다. 아무튼 이곳에 도달 하니 조금 순응이 되었는지, 고소 증세를 느끼지 않는다. 이 사이 일행 중 여자 및 아이들은 4506m 지점에서 사진 촬영만 하고 바로 하산하였다.(특히 아이들이 고소증세가 빨랐다) 나는 먼저 도착한 탓에 사진기가 올 때 까지 조금 긴 시간을 기다린다. 순간 순간 바뀌는 날씨로 정상과 많은 봉 들이 숨바꼭질이 반복 된다. 기쁜 마음에 한국의 아내에게 고지 도달 전화를 하였다. 후미가 도착 하여 기념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날씨가 기울어 지더니 우박이 내린다. 쌀알 크기로 조금 아프다. 급히 발길을 돌려 케이블카 타는 곳에 다다르니 우박이 그치고, 금새 무지개를 세운다.  이곳 봉우리와 저 아래 초원 지대에 걸쳐진 아름다운 모습의 쌍 무지개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로 내려와 일행 들과 합류를 한다. 내심 고소 증세에 대한 우려가 기우에 그쳐, 마음은 다시금 평안해 진다. 오름을 마친 우리는 2000m고지의 리지앙 시가지로 되돌아 온다.

 

시내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인 려강 고성이 있다. 송나라때 건립된 약 1000년 역사를 지닌, 이의 옛 이름은 대연진으로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건축 풍경과 우아한 예술 구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 () 내의 천수(玉泉水)는 도시를 지나가며 많은 집들을 거쳐 흐른다. 길마다 수로가 통하고, 집집마다 문 앞에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어느 거리나 골목마다 모두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고성 미()는 지리 환경과 잘 어울리고, 옥룡 설산의 눈과 얼음 녹은 물이 도로망과 교차하면서 흐르고 있다. 그래서 “고원의 옛 소주(蘇州)” “동방의 베니스”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옛 모습 그대로의 거리에, 어릴 적 고향 집 앞 개울같이, 고기들이 노니는 수로가 시가지 중심을 따라 흐르고 있다. 곳곳에 작은 다리가 있고, 금붕어 방생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상가는 많은 관광객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곳곳에 문화행사와 국경절을 맞이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수로를 따라 즐비한 가게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각별한 즐거움은 개울 따라 있는 주점 들이다. 이곳 안내 책자에도 이곳에서 한잔 술에 취하면서 추억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 되어 있다. 한국의 옛날 학사 주점 같은 모습 이다. 어딘가에 들어가서 기분이라도 느끼자 하는 차에, 우연히 한글로 된 간판을 보고 반가워 한다. “매화 마을”, 이 주점의 사장 부인이 한국 사람 인데, 직접 요리를 하는데, 지금은 출산 휴가라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결코 싼 값은 아니지만, 이국이라는 여건과 한국 요리라는 명분에 기쁜 마음으로 간단한 요리에 한 잔 술을 즐겨 본다.

 

그리고는 려강 문화관으로 이동하여 라시 음악과 이곳 소수 민족들의 민속 무대를 감상한다. 1시간 30분간의 공연은 여타 대도시의 그것과 차이 없이 화려하고, 춤과 음악이 일정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으므로 말을 알아 듣지 못하여도, 감상 하기에 유쾌하고 무리가 없다.

감상을 마치고 나오니, 우리의 려강 여정이 마친 것을 아는지 비가 내린다. 이어 찾아 먹는 저녁은 주점에서의 주전부리로 맛을 이미 상실 하였다. 약간의 맥주와 안주를 준비하여 숙소로 돌아와 또 한 차례의 뒤풀이로 하루를 마감한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이른 아침을 마치고, 숙소에서 30여분 거리의 비행장으로 이동하여, 08:40 출발한 비행기는 09:30 곤명에 도착한다. 비행장을 나서니, 비는 내리지 않고, 조금은 쌀쌀하면서 상큼한 기분이 드는데, 지난 이틀간의 청정 공기 탓에, 자동차가 많은 이곳의 공기는 거북함을 느끼게 한다.

 

북경, 서안과 함께 중국 3대 관광 도시로 불리는 곤명은 운남성의 성도(省都)로 해발 1900m의 운귀(雲貴) 고원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에는 20도를 넘지 않고, 겨울에도 8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온난한 기후 탓으로 봄의 도시(春城)라고 불리고, 사시사철 꽃이 피어 꽃의 도시라고도 한다. 전체 인구는 회족, 백족, 묘족, 하니족 등 20개 소수민족을 포함하여 200만 명 정도이다. 3면이 산으로 둘러 싸인 곤명은 중국에서 6번째로 큰 호수인 면적 330평방 킬로미터의 전지(Dianchi) 호수를 끼고 있어 경관이 뛰어날 뿐 아니라, 유서 깊은 사원과 건축 등이 있는 교통 요지 이다. 곤명은 2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기원전 279년 초나라 장수에게 함락되었는데, 당시 살고 있던 부족이 곤명인데서 이름을 따왔고, 한 때는 프랑스 조차지 이어서 카톨릭 대성당, 수녀원 등이 남아 있다,

 

 

오전 일정은 약 1억년 전 바다 밑이 융기 되었다는 색다른 지형에 불끈 솟은 작은 바위 봉우리들이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그 유명한 석림(石林) 구경이다.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다. 홍콩 배우 주윤발처럼 생김새나, 옷차림이 멋진 기사는 경적소리를 마구 울리면서,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그 경적소리에 우리는 이틀동안 소음에 묻혀 살았다. 석림을 찾은 우리는 좋은 경치보다 인산 인해로 그 멋이 퇴색 되어, 실망이 크다. 국경절 연휴로 많은 사람들로 완전히 정체다. 처음에는 코스 따라 제대로 가다가 시간 낭비도 심하여, 답답함 그 자체이다. 결국 경치 따라 움직이지 못하고, 사람이 조금 한산한 곳을 찾아 구경을 하는 꼴이 되었다. 여기서 경남 거창에서 구경 온 한국 관광객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제대로 구경 못한 실망감은 경내 식당에서 연장 되었다. 맛도 그렇고, 식어 버려,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가 없다. 그래도 억지로 먹는데, 빨리 마치지 않느냐는 종업원들의 인상이 부담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일어서자 마자 금방 식탁을 치우는 모습이란… 이런 시기에 찾아온 우리가 잘못이다고 자책한다.

 

다음 목적지는 구향(九鄕 : Jiuxiang)이란 곳으로 동굴과 협곡 그리고 폭포가 어울린 경승지이다. 석림에서 거의 2시간을 산길로 꾸불꾸불 찾아 간 보람은 있었다. 외관상은 일반 야산이나 진배없지만, 비교적 알찬 구경거리다.개발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개발을 너무 심하게 하였다. 굴 내부에 큰 광장을 만들어 역사관, 동물관등을 만들고, 장사 속 마저 부렸으니, 그들의 심사에 마음이 아프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멋진 것인데, 하긴 이 사람들에게는 아직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불줄기가 협곡을 지나, 동굴을 거치면서 다시 평지로 흘러 나간다. 협곡 군데 군데에 종유석이 돌출되어 있다. 굴은 전형적인 석회 굴인데, 내부에서 굉음을 울리며 떨어지는 용문 폭포는 소리와 울림(공명) 그리고 크기가 압권이다. 걸어 지나가는 동굴 곳곳에서 볼 거리를 보여주고, 큰 광장에는 소수민족 공연도 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데 외부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일종의 요새와 같다. 이의 발견, 그리고 개발이 경이롭다. 경치 구경은 평지에서 승강기로 내려가, 배를 타고 짧은 협곡을, 그리고는 도보로 3개의 큰 굴을 보고, 굴을 마지막으로 빠져 나오면 친절하게도 출발지에 원점 회귀하는 리프트를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조금만 신경을 써서, 원형을 최대한 보존한 개발 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안고 곤명으로 되돌아 온다.

오늘의 여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는 그 동안 입 맛이 맞지 않아 불실 하였던 식성을 만회하려고 조선족 식당으로 정했다. 우리가 사는 혜주에 비하여 가격은 싼 반면, 맛과 질은 조금 떨어진다. 전체 여정의 마무리 의미도 있고 하여 오래간만에 식사와 주효를 즐기면서 운남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전 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오후 3 20 비행기고 하여, 단출한 구경거리로 좀 늦은 출발이다. 목적지는 곤명 시내의 서산 용문(西山 龍門) 이다. 서산은 다양한 코스와 조망을 갖고 있어, 비록 차림은 우리하고 틀려도,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고, 매 코스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용문입구 주차장에 하차하여, 다시 기념품 가게 길을 10여분 걸어 매표소에 다다른다. 여기서 용문 정상(누각이 있음)까지 40여분 거리이다. 이 길 곳곳에 도교 사원과 절이 있고, 제각기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 길은 본래 절벽에 매달린 사다리 길이었는데 실족사 하는 사람들이 많아, 도를 닦던 도인들이 72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절벽 단애 길이다. 조명을 위하여 창문도 내기도 하였다. 어떤 조그만 한 굴(터널)은 도인 한 사람이 30여년 걸려 만들었단다.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그 덕분에 우리는 경관을 즐기며 안전한 오름을 하는 것이다. 이 길 따라 가면서 세가지 장소에서 만져야 할 것이 돈(금괴), 거북이, 여의주인데 각각 재산, 장수, 벼슬을 의미 한다. 오늘은 아쉽게도 안개로 경치 구경은 할 수 없으나, 잠깐 동안 땀 흘리며, 정상에 오르는 작은 기쁨은 있다. 배경 없는 사진을 찍고는 정상 아래 있는 가게(리프트 타는 곳)에서 한잔의 맥주로 목을 축인다. 산 허리를 타고 내려가는 리프트는 넓이가 서울만 하다는 호수 조망의 기쁨을 준다는데, 오늘은 극히 일부만 보아 그 크기 가늠이 어려운 아쉬움을 갖는다.

 

산을 내려와 찾아가는 곳은 곤명 시내 관광지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쌍탑(雙塔 :동탑/서탑) 거리인데 고건물, 상가, 주점 들이 건축물, 조각품 등과 어우러져 있는, 현대와 고대가 함께 숨 쉬는 거리이다.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돌아 볼 필요가 있으나, 짧게 주는 시간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곤명의 자랑거리인 꽃 시장 하나를 본다. 많은 물량의 꽃은 한국의 화훼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하니, 이 지역의 경제에도 한국의 역할이 만만치 않다.

꽃 내음을 끝으로 운남 기행의 종지부를 짓고 비행장으로 이동한다. 오후 15:20 곤명 출발, 17:00 심천 도착, 다시 자동차로 이동하여 19:00 혜주 도착으로 4 5일의 여정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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