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6일 새벽.
버스는 어두운, 바다와 나란히 달리지만 바다가 보이지않고, 오히려 모텔 네온사인들이 유달리 많이 눈에 들어오는 7번국도 영덕길을 달리고 있다.
함께 해야할 이유가 분명하지만, 많은 망설임을 하다가, 봇짐을 꾸려 집을 나왔다. 오늘 산행을 위한 두 끼중 하나는 도시락, 또 하나는 시장에서 떡을 사서, 양산일반고속버스 정류장에서 합류하여 이 버스를 탄 것이다.
생각은 많은 것을 일깨워 주듯, 잠시간의 수면은 체력안배의 조미료가 되는데. 이 밤, 이 시간 잠조차 청하지 못한채, 이 글을 적고 있었다. 요 며칠 연일 3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서도...
새벽3시. 차는 조용히 잘도 달려, 들머리인 화방재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비록 잠 한 숨 못 청했지만, 새벽 시원한 기운이 잠시간이라도 몸을 개운하게 한다. 바지런히 준비를 마치고는 산길로 접어든다.
내맘속에는 오늘 걸어야할 길에 걱정이 만감이다. 자연 걸음걸이가 무겁다. 눈앞에 비쳐주는 랜턴빛이 전부인 이 길. 7여년전인가 상봉과 함께 겨울산행했던 길이다. 사걸령. 산령각. 유일사 쉼터등을 지나며, 점차 고도를 높여 간다. 그리하여 2시간 20여분만에 1차 목적지인 천제단에 닿는다.
이 곳에서 백두대간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간단한 제를 올린다. 다들 뜨거운 열정의 건투를 다짐한다.
너구리 한 마리가 우리 주위에서 빙빙 돌며, 음식물을 얻어 먹고 있다. 우리들은 호기심에 너도 나도 과일로 환심을 끌고 있고, 이 놈은 이미 이런 일들이 다반사인듯 열심히, 배를 채울 뿐이다. 어찌 받아들여야할 그림인가?
장군봉 정상에서 일출을 본다. 이 멋진 장면을 몇 사람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이제 길은 순탄하게 고도를 낮춘다지만, 그래도 남은 길은 20Km.
다소 편안하고 발걸음에 적절히 좋은 길. 즐거운 걸음으로 선두를 뒤따른다. 선두는 준족이라 그들과 함께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나는 그저 후미만 아니길 바랄 뿐이다. 깃대기봉 조금 못미친, 나무테크길에서 아침을 먹는다. 우선 떡으로 때우고, 이상구 총 산행대장이 권하는 한 모금의 맥주가 모자라니, 더욱 시원함을 가져다준다. 고민했던 컨디션이 아직은 괜찮다. 그래도 5~6시간 10Km내외의 산행으로 길들여진 나의 체력이 분명 언제쯤은 그 징후가 나타나서, 발목을 잡으리라...
근데 이 산길은 오로지 걸음걸이에만 집중토록 한다. 조망이 없는 숲길을 그저 달려야만 한다. 오로지 대간 종주라는 목적의식에 달릴 뿐이다. 이런 산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더 빨리 지치게 하리라. 때론 조망이 잠시간의 피로회복이 될텐데... 묵묵히 걷자, 걷자꾸나. 가끔은 함께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느 구간은 홀로 걷기도 한다. 오늘 이 대간종주에 처음 격려차 참석한 김상훈 아카데미 총동창회 회장과의 잠시간의 동행도 있다가, 그도 어느새 앞으로 가버리고, 점차 후미진과 가까워진다. 이제 조금씩 지친다. 신선봉 오름에서는 발걸음도 느리워진다. 그래도 변함없이, 야금야금 걷는다. 김경섭교무강사와 김행구강사가 함께 하는 길이 되였다. 나의 늦은 걸음에 걱정하면서, 소리없는 격려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사실 오늘 이 산길을 나에게 강력히 초청한 사람이 김경섭교무다. 그와 나는 벌써 35년 정도의 산친구이다. 오늘 이 산행이 그의 환갑기념에, 자기고향 봉화를 지난다고, 한턱 단단히 쏜다고 벌써부터 채근하지 않았던가? 그 땜새 김행구강사도 첫 발길을, 또 이곳 출신인 김상훈 동창회장도 의리 참석도 하였다. 나역시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함께 하는 산길이다.
나의 영원한 산친구, 그의 견실한 산행을 기원한다.
곰넘이재에서 점심을 한다. 점차 피로가 가중되니 밥맛도 없다. 배갈 한 잔에 마음을 다잡지만, 탈출로가 옆에 있으니, 자꾸 마음이 동한다. 어쩌지? 앞으로도? 또 마지막 난봉인 구룡산도 있는데?
그래도 가야지. 함께 동행해야지하는 마음 갖는 순간, 이미 모두들 떠난지 오랜 시간! 이제 남은 후미는 방금 도착한 5명. 나는 앞서간 그들을 뒤따른다.
날씨가 결국엔 비를 부른다. 채비를 다시하고는, 우산을 쓰고 걷는다.
운치도 새롭고 좋은데, 발길은 더욱 느려진다.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나를 지원하는 김행구 강사마저 먼저 보낸다. 이제부터 홀로가는 산길이다. 그리고 난봉인 구룡산을 오른다, 생각보다 힘든 오름은 아닌데, 지친 내 발길이 머뭇거리길 몇 차레, 드디어 올라선 그곳엔 4사람이 쉬고 있었다. 반갑다. 이후 발길은 김창진 20기 총산행대장 부부와 같이 한다. 마지막 종점까지!!!
남은 5.4Km.
이제는 지친 발걸음도, 완주하여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니 발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고, 가끔씩 나타나서, 나를 긴장케하던 다리의 이상조짐도 서서히 사라진다. 미끄럽고, 머나먼 (?)길을 조심스레히 내려간다. 가다 쉬고, 간식도 먹으며, 세 사람이 야금야금 내려간다. 작은 봉우리를 몇 개 넘어서, 드디어 숲사이로 버스가 보인다.
오후 2시51분 도래기재(우구치)에 닿았다.
12시간의 긴 여정이다. 수고했다. 나에게 내가 격려를 보낸다.
건네주는 맥주 한 잔이 정말 시원하다. 그래서 한잔 더 하고는, 물가를 찾아간다.
춘양에 도착하여, 김경섭교무의 회갑연에서 마신 술이, 그간의 피로를 불러왔는지,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청도휴게소, 또 조금 눈을 감고 떠 보니. 만덕터널이다.
동래에서 내려, 집으로 향한다.
긴 하루였다. 조금은 뿌듯하고, 조금은 나에게 질책을 한 산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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