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저물어가는 시간 즈음에,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를 찾아갑니다.
내 고향 뒷동산 마냥, 정이 가는 나즈막한 구릉같은 산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산에 기대어 살고 있는, 저녁짓는 연기가 온 동네를 휘어감는 예전의 시골 풍경이 아니지만,
아직은 덜 도시화되어 있는 창밖의 정경을 보며 찾아간 도산서원입니다.
겨울 저녁이라 공기는 차갑지만, 좋은 그림을 갖고, 멋지게 자리잡은 모습에서, 옛 선인들의 탁월한 택지선택에 박수를 드립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 ·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했다. 1792년(정조 16)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 시사단 (試士壇)을 세우고, 1819년(순조 19)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 건립하였다. 1870년(고종 7)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 서광명실(西光明室) 증건(增建)하였고 1932년(임신년) 하고직사(下庫直舍) 이건하였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 · 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태여, 그 역사적 의의를 알지 못한다하여도, 웬지 조심스럽고, 엄숙해지는 기운을 트낍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추앙을 받고, 존경을 받는 퇴계 이황선생님늬 그 뜻과 업적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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